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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여행/강원도 사찰

금강산 건봉사

by Pinetree3293 2021. 6. 2.

2021. 6. 1.

신흥사를 츨발하여 북쪽 고성의 건봉사로 향한다. 적멸보궁이 있는 건봉사는 한때 설악산의 신흥사와 낙산사

백담사를 말사로 두었을 만큼 대사찰 이었다고 하며 금강산의 입구에 있다 하여 금강산 건봉사라 한다.

 

건봉사는 520년(신라 법흥왕 7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으며, 758년에 발진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스님등과 염불만일회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되었다.

여기에 신도 1,820인이 참여하였는데, 그 중에서 120인은 의복을, 1700인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인들을 봉양하였다.

787년에 염불만일회에 참여했던 31인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서 극락에 왕생하였고, 그 뒤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왕생했다고 한다.

이로써 아미타 도량이 되었으며 고려말 도선국사가 절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서봉사로 바꾸고

1358년에는 나옹스님이 중건하고 건봉사로 개칭하여 비로소 염불과 선, 교의 수행을 갖춘 사찰이 되었다.

1465년에는 세조가 이 절로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으로 삼은 뒤 어실각을 짓게 하고 전답을 내렸으며, 친필로 동참문을 써서

하사하였는데 이때부터 조선왕실의 원당이 되었으며 성종은 효령대군, 한명회, 신숙주, 조흥수, 등을 파견하여 노비, 미역밭과

염전을 하사하고 사방 십리 안을 모두 절의 재산으로 삼게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승병을 기병한 곳으로 호국의 본거지이었으며, 1605년에는 사명대사가 일본에 강화사로 갔다가

통도사에서 왜군이 약탈하여 갔던 부처님 치아사리를 되찾아 와서 이 절에 봉안한 뒤 1606년에 중건하였다.

1802년에는 용허 석민스님이 제2회 염불만일회를 열었으며, 1851년에는 벽오 유총스님이 제3회 염불만일회를 열었고,

1878년 4월 3일에 산불이 일어나서 건물 3,183칸이 전소되었는데 다음 해에 대웅전, 어실각, 사성전, 명부전, 범종각, 향로전,

보안원, 낙서암, 백화암, 청련암을 중건하였다.

1881년에는 만화 관준스님이 제4회 염불만일회를 설치하였고, 1906년에는 신학문과 민족교육의 산실인 봉명학교도

설립하였다. 1908년 제4회 만일회를 회향한 뒤 금암 의훈스님이 제5회 염불만일회를 설하고 옛부터 있던 돌무더기의

소신대에 31인의 부도를 세우는 한편 1921년 인천포교당과 봉림학교를 세웠으며, 한암스님을 청하여 무차선회를 여는 등

우리나라 4대 사찰의 하나요 31본산의 하나로서 명망을 떨쳤던 곳이었으나 아쉽게도 한국전쟁 때 완전히 폐허화 되어 지금은

중창불사를 통해 사격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다. <건봉사 홈페이지>

 

건봉사 입구 도로옆의 사명대사 유정

 

건봉사 입구의 부도전

대사찰 이었음을 증명하듯 수십개의 부도가 줄지어 있다.

사찰에 들어서면 좌측에 제일 먼저 보이는 사명당 기념관

 

사명당 기념관 옆에 있는 만해 한용운 대선사 시비

 

우측에 보이는 화장실과 황토집

불이문

불이문 우측의 팽나무는 500년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건봉사와 불이문 안내문

우측계곡의 능파교와 사찰 전경

 

 예전에 대사찰이었음을 알리는 넓은 절터

석주와  범종각

건봉사 전경

넓은 절터 사잇길로 독성각과 산신각 오르는 길

 

독성각 앞 좌,우로 사각형의 연못이 보이고

 

독성각

산신각

적멸보궁

적멸보궁 내부. 창으로 진신사리 탑이 보인다.

 

 

 적멸보궁의 범종

적멸보궁의 진신사리텁과 부도

 

진신사리탑

일요일이라 군장병들이 법회에 많이 참석해 있다.

 

만일염불원

대웅전

대웅전의 아미타삼존불좌상

 

명부전

 

수조

금강산 건봉사 현판이 걸린 전각

계곡을 가로지르는 능파교. 보물 제 1336 호

 

고성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적멸보궁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이다.사적기에 따르면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아도 스님에 의해

원각사(圓覺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그후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중수한 뒤 절의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7년(1358년)에는 나옹 스님이 중수하면서 다시 건봉사라

이름하였다.

 

다리의 중앙부분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틀고 그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쌓아서 다리를 구성하였는데,

홍예는 하부 지름이 7.8m이고 높이는 기석의 하단에서 4.5m이므로,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다.

조선 숙종 34년(1708)에 건립된 경내 불이문 옆의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에 의하면

이 다리가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영조 21년(1745)에 대홍수로 붕괴되어 영조 25년(1749)에 중수하였고, 고종 17년(1880)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돌층계와 산영루(山映樓)를 고쳐 쌓는데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규모가 비교적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다리로, 축조연대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비석을 갖추고 있어

홍예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건봉사를 나오며 돌아본 불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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