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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여행/경상도 사찰

남해 금산 보리암

by Pinetree3293 2021. 4. 21.

2021.  4.  20.

 

남해와 거제를 한바퀴 돌아 보기로 하고 밤새 차를 달려 보리암 주차장에 도착하여

눈을 잠시 붙이고 이른 아침에 보리암으로 오른다.

 

입구부터 안개가 잔뜩 끼여있어 낼다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오래전 부터 오고 싶던 곳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오른다.

 

보리암은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관음신앙의 3대 기도처 가운데 하나다.

또한 남해군의 용문사, 화방사와 함께 남해 삼대사찰이기도 하다.

금산은 본래 보광산이라 불렸는데 후에 금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려고 백두산과 지리산에서 기도를 하였으나 효험을 얻지 못하고,

다시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어느 날 꿈에 금산의 산신령이 나타나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어주는 대신

보광산 전체를 비단으로 싸 달라는 요구를 하였다.

이성계는 이를 수락하였고 이내 왕이 된 이성계는 산신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광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고자 하였다.

 

그러나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싼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임을 깨달은 이성계는 기지를 발휘하여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錦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상주 마을 금산 입구에서 약 3km정도 올라가면 보리암에 다다른다.

울창한 숲과 남해바다가 이루는 조화를 감상하며, 걸어서 50분 정도 올라가면 보리암에 도착할 수 있다.

앵강고개를 넘어 이동면 벅시골에서 북곡저수지를 지나 금산 8부능선까지 도로가 나있어서 이곳까지

자동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보리암의 창건은 683년(신문왕 3) 원효 대사에 의해서라고 전한다.

 

산하를 유력하던 원효 스님이 이곳에 초암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에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하고 절 이름 또한 보광사(普光寺)라 하였는데, 이것이 금산과 보리암의 전신이다.

 

이름난 기도도량으로 널리 알진 것에 비하면 보리암의 창건과 관련한 옛 기록은 찾을 길이 없어

남해와 사중에서 전하는 이야기만이 창건 시기를 추측하게 할 따름이다.

다만 보리암을 비롯하여 화방사 등 남해 지역 사찰들이 원효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는 믿음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보리암이 원효 스님이 창건한 첫 번째 사찰로 전하고 있어

남해에서의 보리암의 위상은 예나 오늘이나 적지 않을 것임을 느끼게 한다.

 

창건 이후 보리암의 사적을 알만한 자료가 없어 어떠한 모습으로 변천해 왔는지 또한 알 길이 없다.

다만 보광산이 금산으로 바뀌는 과정을 전하고 있는 이성계 관련 설화가 조선 초기 금산의 존재를 전하고 있을 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보리암은 금산에 있으며, 남쪽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고 하는 내용이 간략히 기록되어

있는 정도이다.

 

1660년(현종 1)에 와서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보리암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그 뒤 1901년에 낙서(樂西)와 신욱(信昱) 스님이 중수하였으며, 1969년에 이르러 양소황(梁素滉) 주지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리암 입구. 이곳에서 보리암 까지는 900m를 걸어야 한다.

보리암 오르는 길

좌측이 보리암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은 금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기도하는 마음을 기와불사에 담아 놓았다.

보리암은 거대한 바위아래 자리잡고 있다.

 보광전 모습

범종

삼층석탑

해수관음상

좌선대

극락전 불상

복곡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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